스쿠버다이빙의 발자취3)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은 스포츠에 있어서 과도기였으며 이 기간은 중요한 장비의 진보와 수용의 시대였고 예를 들어 BCD(Buoyancy Control/Compensate Device)는 말의 목사리 같은 형태로 입으로 공기를 불어 넣을 수 있거나(가느다란 튜브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카트리지로 부풀릴 수 있는 형태로 사용되었으며 사용하기 어색하긴 했으나 몇몇 다이버들(특히 동굴 다이버들)은 이 수중 부력 조절 장치의 이점을 파악했으며 프랑스의 펜지(Fenzy))BCD는 큰 인플레이션 호스가 달렸고 실린더를 맬 수 있게 나온 첫 번째의 BCD로 재빨리 거의 모든 제조업체를 이끌어 다른 제조업체들은 이와 비슷하게 스쿠버 레귤레이터로 인플레이션이 가능한 BCD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다이버들은 다이빙 내내 버튼을 누름으로 중성 부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크게 신체적인 에너지 소모를 줄였으며 이 저압 인플레이션 BCD(Buoyancy Control/Compensate Device)가 다이빙을 더 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예비 공기 공급원(엑스트라 2단계) 이 젋은 동굴 다이빙 공동체에서 나타나게 되었으며 동굴 다이버로서 간단히 1단계에 새로운 포트를 만들어 2단계를 하나 더 끼워 넣으면 된다고 한 할 와츠(Hal Watts)가 그 공헌자로, 그가 아니었다면 모든 다이버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장비가 되기 까지는 적어도 십 년 이상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 기간은 또한 현대 다이브 컴퓨터의 기계적 선주인 감압 측정기가 등장한 시기이며 비록 1959년에 이미 활용이 가능했으나 이 기간 전까지는 그렇게 널리 이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여전히 테이블을 이용했습니다. SPG(Submersible Pressure Gauge) 전까지는 선택적인 장비로 여겨졌던 이 공기 잔압계 역시 심도계와 시계/잠수 시계 및 나침반과 함께 기본 장비로 설정되었으며 최초의 현대식(다양한 부피로 된) 드라이 슈트 역시 출시되어 이 전까지보다 훨씬 차가운 물에서도 편안하게 다이빙할 수 있게 되었습다.
이러한 장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다이빙에 과한 인식의 변화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빙은 누군가 감히 위험한 모험과 도전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스포츠맨(남성이 여전히 우세)이나 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 이유 중의 하나는 다이버 훈련이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부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비의 진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나 다이빙 훈련은 여전히 강한 신체적인 조건을 요구했고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에 여전히 집중되어 있었으며 더블 호스 레귤레이터는 사라졌으나 많은 테크닉들, 예를 들어 하나의 호흡기를 나누어 쓰는 짝 호흡 등은 여전히 더블 호스 레귤레이터를 기초로 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966년, 다이빙 훈련이 테크놀로지에 부응하려면 약 10년은 더 걸릴 것이었으나, 이 역시 변화를 눈앞에 두게 되었고 이 해에 크게 성공적이던 스쿠버 제조업체 대표이자 강사이던 존 크로닌(John Cronin)과 수영 코치이자 스쿠버 강사이던 랄프 에릭슨(Ralph Erickson)은 함께 새로운 훈련 기관인 PADI(Professional associationfo diving Instructors)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레벨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추구하던 중, 크로닌과 에릭슨은 PADI를 다이빙의 주된 교육과 비즈니스 실행 기관으로 성장시키기로 했으며 훈련 면을 담당한 에릭슨은 정식의 강습 학습 목표를 국제적 스쿠버 프로그램에 도입한 첫 사람이 되었고, 이 당시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작은 훈련 기관이 무엇을 시작하는지 알았을 뿐이었고, 크로닌과 에릭슨이 시작한 이 작은 눈덩이는 약 15년 후 언덕 아래에 커다란 눈사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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